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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소개재단소개

먼지가 쌓여도 이 땅에 쌓이게 해야 합니다.

목암과학장학재단은 한정된 자원을 지닌 대한민국의 과학기술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우리의 책무라 여기는 목암 허영섭 선대 회장의 굳은 사명감으로 세워졌습니다.

목암 허영섭 (1941~2009, 경기도 개풍 출생)

목암 허영섭 선대 회장은 돈이 되는 치료제 개발보다 국민의 건강에 도움이 되는 신약개발에 온 힘을 기울였던 필수의약품 국산화의 선구자였습니다.

1960년대 독일에서 공부하면서 한국의 보건 환경에 안타까움을 느꼈던 목암 허영섭 선대 회장은 1970년 귀국 후, 녹십자를 설립해 수입에 의존하던 필수 의약품의 국산화를 이룩하는데 힘썼습니다. 또한, B형 간염백신 등 의약품 개발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마련한 기금으로 생명공학 연구의 기반을 다지고, 국내 과학 발전에 기여하여 사회에 환원하고자 민간연구재단인 목암생명공학연구소(현재 목암생명과학연구소)를 설립했습니다.

과학은 국가를 일으켜 세우는 입국의 근간이며
국가의 내일을 풍요롭게 하는 부국의 초석입니다.

목암 허영섭 선대 회장은 척박하더라도 한국에 연구소를 만들어야 연구성과와 연구인력이 한국에 남아 있을 것이라는 지론을 실천하였습니다.
목암 허영섭 선대 회장은 독일 아헨공대 출신 CEO로서 성공적으로 기업을 이끌며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의 생명공학산업을 개척하였습니다.

또한 민간외교단체 활동을 통해 한독 양국의 우호협력 증진에 많은 기여를 한 바, 독일 아헨 공과대학이 수여할 수 있는 가장 명예로운 칭호라는

‘명예세너터(Ehren senator)’를 개교이래 외국인으로서 처음으로 수여 받았습니다.

목암牧岩

‘목암’은 가꾼다는 뜻의 목(牧)과 넓은 의미에서 지구를 뜻하는 암(岩)이 합쳐져 ‘지구를 풍요롭게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목암 허영섭 선대 회장은 한인 유학생과 국내 연구재단을 위한 지원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유럽의 MIT’라 불리는 독일 아헨공대의 학생들이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는 열람실이 부족하다는 학교 소식에 개인 기부금 100만 유로를 지원하며 2007년 ‘목암하우스(MOGAM Haus)’를 설립하였습니다.

2009년 68세로 타계한 목암 허영섭 선대 회장은 자신의 주식과 유산 3분의 2를

장학재단과 연구재단에 기부함으로써 마지막까지 사회적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의 이익을 위해 지속 가능한 바이오 의약품 산업을 만들어가는 데 평생을 바치신 목암 허영섭 선대 회장. 그는 탁월한 바이오제약 경영자이면서 항상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기업인이었습니다. 목암 허영섭 선대 회장의 업적은 국경을 넘어 전세계인의 삶을 향상시키는데 기여할 것입니다.